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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인간 본성의 끝을 마주하다. 핏빛 자오선 "Blood Meridian"

컬처모자이크 2024. 10. 6. 23:42

핏빛 자오선

코맥 매카시의 『핏빛 자오선』을 다 읽었다. 이 책은 시작부터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예상이 딱 맞았다. 무거운 이야기, 잔인한 묘사, 그리고 복잡한 문장들... 매카시가 정말로 한계까지 밀어붙인 느낌이다. 그래도 끝까지 읽고 나니 마음 한구석에 묵직한 감정이 남아 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주인공은 '소년'이라고만 불리는데, 이름조차 없어서 더 쓸쓸하고 무명한 느낌이 든다. 이 소년은 집을 떠나 텍사스와 멕시코 국경을 넘나들며 모험을 한다. 그러다 글랜턴이라는 사람과 그 갱단에 합류하게 되는데, 이 갱단은 인디언을 사냥하는 무리로, 그들이 겪는 일들은 정말 잔인하고 끔찍하다. 그 중에서도 판사 홀든이라는 캐릭터가 정말 독특하고 무서운 인물이다. 그는 단순히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라, 폭력 자체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려고 하는 인물이다. 그의 말과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이게 현실적인 이야기인지, 아니면 악몽 같은 상징인지 헷갈릴 정도다.

매카시가 묘사하는 서부는 우리가 흔히 영화에서 보는 서부와는 완전히 다르다. 총잡이들이 멋있게 말을 타고 달리며 영웅적인 순간이 펼쳐지는 그런 서부가 아니라, 피와 먼지, 무질서한 폭력이 가득한 세계다. 자연은 아름답지만 무자비하고,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그 안에서 소년은 점점 더 잔인한 세계에 물들어 간다. 이 책의 제목이 '핏빛 자오선'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끊임없이 지는 해처럼, 인간의 폭력성은 계속 반복되고, 끝도 없이 흘러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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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읽으면서 많이 힘들었다. 매카시의 문장은 정말 시적이지만, 그 시적인 언어로 묘사하는 것이 폭력과 죽음이라는 점

이 아이러니했다. 길고 복잡한 문장들 속에서 자연의 모습이나 인간의 본성을 깊이 파고드는 묘사들이 계속 나오는데, 한 문장 한 문장을 소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매카시의 글에는 힘이 있었고, 마치 내가 그 끔찍한 황무지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서운 장면들이나 잔인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매카시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코맥 매카시는 1933년에 태어난 작가인데, 그가 쓴 다른 작품들도 대부분 인간의 어두운 면을 탐구하고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영화로 봤는데, 그때도 매카시 특유의 절망적이고 냉혹한 세계관이 잘 드러났던 것 같다. 특히 이 『핏빛 자오선』은 그런 면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매카시가 그리고 있는 인간은 결국 끝없는 폭력 속에서 생존하려고 발버둥치는 존재들이다. 그 안에서 우리가 진정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묻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난 내 감상은 뭐랄까... 마음이 좀 무겁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 책을 읽은 것이 가치 있다고 느껴진다. 단순한 서부극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깊이 파고드는 철학적인 책이고, 매카시는 그걸 아주 솔직하고 거침없이 풀어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이 이 책의 진짜 의미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자주 외면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어두운 면, 그리고 그 안에서의 희망 없는 싸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핏빛 자오선』은 쉽게 잊을 수 없는 책이다. 읽고 나서도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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